순교자소개


최 감 은 ( 崔 感 恩 , 1905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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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영혼의 따뜻한 위로자 ”
생년월일 : 1905년 8월 27일
출생지 : 평안남도 대동군 고척면 신흥동
순교일 : 1950년 6월 25일 이후
순교지 : 평안남도 대동강변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최감은은 1905년 8월 27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척면 신흥동에서 대지주 최윤택장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최감은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일본 메지로중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였다. 부친이 설립한 식송교회를 돌보며 약종상을 경영했다. 1939년 35세에 평양신학교를 34회로 졸업하고 안주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풍전교회를 시발로 식송교회 대일리교회 황화교회를 섬겼다.

고후 6:14-16절을 따라 목회를 못하면 못했지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율배반적인 목회자가 될 수 없어 사표를 던지고 온전한 교역자가 되지못할 바에는 약종상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최감은목사의 심정을 들은 부친 최장로로부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부를 더함이 어떻겠느냐. 목사는 죽을 때까지 학문과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권면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고오베신학교에 입학했다.

지조 있는 목사들은 교역지에서 떠나 두메산간에 기거하며 성경연구를 할 때 최목사는 상아탑에 틀어가 본격적으로 학문에 돌입하였다. 고베신학교에서 해방을 맞은 최목사는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인장교회에 부임했다.

1945년 해방되자 북한 전역이 공산화되면서 토지개혁으로 부친 최장로는 부르주아로 몰려 토지가 몰수당하자 하루아침에 몰락을 하게 되어 부친의 지원도 못 받는데다가 봉급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주며 아내와 궁핍한 생활을 꾸려나갔다. 최목사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 장로 중 한분이 사람을 시켜 감쪽같이 대청마루에 쌀 짝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최목사는 사인장교회에서 동평양교회로 옮겨 목회하다가 구동창교회로 옮겼다. 최목사가 구동창에 시골교회로 임지를 자원한 것은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묵살하고 공산당의 발호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50년 6.25사변이 터졌다. 최목사는 2년간 조용히 목회를 하던 중이었고 미처 피난가지 못한 교인들을 교회에 숨겨주고 뒷바라지를 하다 발각되었다. 최감은목사는 내무서원들에게 끌려가 대동강변에서 총살형을 당해 46세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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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감은 목사-김요나 저 순교자 전기

최감은 목사의 목회 일생은 화려한 것도 실패한 것도 없는 평범한 목회자의 길이었다. 그러나 환난 날에 공산당의 마수에 걸려 총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용기를 낼수 있다는 것은 작은 믿음으로는 힘든일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