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현 ( 金 周 鉉 , 1903 ~ 1950 )

“ 삼례 복음화운동의 기수 ”
생년월일 : 1903년
출생지 : 함경북도 북청
순교일 : 1950년 9월
순교지 : 전주내무서 앞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김주현은 1903년 함경북도 북청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국경 저편에 있는 간도땅으로 이주해 살게 되어 1906년 애국지사들이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한 용정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193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함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김목사는 서운동교회를 거쳐 복주동교회를 담임하면서 3부예배로도 오는 교인들을 수용할 수 없어서 3층 교회당을 신축했다.

장로교 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국가의례로 가결하자 목사 인솔하에 신사로 몰려가 참배하던 어수선 하던 때 변절한 목사들과 교회내의 반대파들과 당국의 감시에 견디지 못한 김목사는 종래 임지를 흥남시에 소재한 내호교회로 옮겨왔다.

일제말엽 교회문은 닫기고 군수공장으로 징발당할 때 내호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교회사수를 위해 죽음과 같은 세월을 살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황제를 하나님으로 섬기던 로마군국주의 황제신앙과 다름없는 국가에 종속된 종교를 피해 월남해 교역자가 없는 가리실교회 담임을 하다가 1950년 3월 완산군 삼례읍 후정교회로 교역지를 옮겨 삼례복음화운동의 기치를 들었으나 6월 25일 민족상잔의 전쟁을 맞이하였다.

1950년 9월 김주현목사는 피난가기를 원하는 식구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키다가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애국지사들과 함께 전주내무서 앞에 끌려 나와 쇠몽둥이에 얻어맞고 쓰러진 후 사회주의 신봉자가 내려치는 쇠도끼에 두개골이 빠개져 처참히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