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선 ( 金 在 善 , 1894 ~ 1950 )

“ 제주의 두 번째 순교자 ”
생년월일 : 1894년 9월 10일
출생지 : 제주도
순교일 : 1950년 8월 3일
순교지 : 목포형무소 뒷산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김재선은 1894년 9월 10일 제주도에서 출생하였다. 친 형인 김재원(제주도 초대영수, 초대장로)의 소개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제주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교회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학을 공부하기위해 미션학교인 목포영흥학교를 다녔으며 다시 평양숭실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고향에 내려와 외도교회와 조수교회 도사로서 첫 선교의 발걸음을 딛기 시작하였다. 

1922년 당시는 기도 처소였지만 김재선전도자의 뜨거운 선교의 열매로 10년 후인 1932년 1월14일에 창립예배를 드리게 된다. 조수교회와 외도교회의 사역으로 자신의 역량을 확인한 후 김전도사는 결국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목사 수업을 받아 1928년에 졸업(제23회)하고 전남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제주도에 내려와 제주노회 창립에 공헌하고 삼양교회를 섬기면서 3년간 열악한 교회를 순회하면서 한경면 조수·용수·고산·두모교회 등을 부흥시켰다. 김 목사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성장시켜 후배 목회자들에게 물려주어 후배 목회자들에게 존경받은 분이었다고 한다. 재일동포에게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던 김목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전남지방의 좌익세력에게도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당시 좌익사상자들로 넘쳐나는 목포형무소가 형목(刑牧)을 필요하게 됐고, 1948년 전주에서 15명의 형목을 배치할 때 김 목사는 목포형무소에 배속됐다. 그는 감방마다 순회하면서 좌익사상범들을 교화하는데 힘쓰다가 6.25전쟁을 겪게 되었다. 

1950년 7월21일 목포를 떠나는 피난민선에 올라탄 김목사는 함께 일하던 형무소장이 보이지 않자 피난선에서 내려 목포 교도소로 그를 찾아 나섰다. 그는 국가공무원의 자격으로 당국에서 준비한 피난선에 승선했음에도 형무소장을 찾아 피난선 타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미 형무소는 북한군에게 점령되었고 김목사는 탈옥한 좌익죄수들에게 붙들려 되레 목포형무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10일간의 구류 후에 인민재판에 회부된 그는 1950년 8월 3일 애국 청년 7명과 함께 목포형무소 뒷산에서 총살됨으로써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