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석 원 ( 金 錄 元 , 1901 ~ 1950 )

“ 황해도 사리원교회를 지키던 목사 ”
생년월일 : 1901년 5월 1일 
출생지 : 평북 영변
순교일 : 1950년 10월 3일
순교지 : 피성골에서 기도하던 중 연행 북문에서 총살
직분 : 목사
교단 : 감리교


김석원은 1901년 5월 1일 평북 영변에서 태어났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난 김석원은 영변보통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고향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농사에 종사하였으나 가정을 이루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단신 상경하여 특별히 찾아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던 중 그는 피어선 성경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만난 하나님 말씀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게 된 그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움에 넘쳐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하게 되었다. 비교적 늦게 제 7회로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오랜 기다림속에 이루어진 목회의 길은 열심을 다하는 섬김의 자세였다.

정동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진남포교회를 시무하던 중 1937년에 만주지방의 선교사로 파송받게 되었다. 이 때 만주지방은 이미 일제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있었고, 동포들은 만주로 이민하여 와서 생활기반을 이루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감시와 만주인의 질시로 이중적인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동포를 위 해 왕청현 역전감리교회에서 목회에 정성을 쏟았다.

해방 후 뒤늦게 1948년에 사리원지방으로 귀국하여 사리원지방회 감리사로 수고하던 중 6.25 전쟁을 맞았다. 감리사를 찾기에 혈안이 된 공산군들은 고향의 영변 피성골에 은거하고 있던 김목사를 체포하였다. 이곳에는 4명의 동역자들과 16명의 동행인들이 피신하고 있었다. 1950년 10월 3일 피성골에서 기도하다가 공산당에게 연행되어 북문에서 총살되었다.김목사를 위시한 20여 명은 영변 북문으로 끌려나가 총살당함으로 승리의 길로 가는 순교의 길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