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용 택 ( 趙 龍 澤 , 1902 ~ 1950 )

“휘어지기보다 부러지기를 선택한 순교자”
생년월일 : 1902년 1월 5일
출생지 : 전라남도 담양
순교일 : 1950년 9월 29일
순교지 : 전라남도 담양
직분 : 전도사
교단 : 장로교


조용택 전도사는 1902년 1월 5일 전라남도 담양 옥과에서 부 조동윤 모 박치선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담양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5세에 탈메이지(J.V.Talmage) 선교사 조사인 고모 조덕화에 의해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는 탈메이지 선교사가 설립한 순담청년성경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탈메이지 선교사의 조사로 순천 담양지방에서 순회 사역을 담당하였다. 또한 전남노회 유지재단 설립 사역에도 헌신하였다. 

1937년 탈메이지 선교사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 입학하였으나 제 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에 반대하여 1938년 평양신학교를 자퇴하였다. 당시 호남지역 신학생 박동환(박팽동), 김용하(김용수) 등과 함께 낙향하였다. 그리고 고향 옥과

교회 전도사로 부임 시무하였지만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하다 6개월간 광주경찰서에 구금되었다. 4년간 미결수로 수시로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갔다. 결국 황국신민화 반대와 일본 왕에 대한 불경 죄목으로 2년 징역을 마치고 1944년 8월 12일 출소하였다. 그는 출옥하여 자신이 시무하던 옥과교회를 재건하는데 힘썼다.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1950년 9월 29일, 조용택 전도사는 당시 수피아여고를 섬기고 있는 교장 유하례(Root, florence Elizabeth) 선교사를 피신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유하례 선교사는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고도 학교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철수하지 않고 교장실에서 기도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1950년 7월 23일 광주에도 공산군이 침입하여 아비규환의 비극을 연출케 되었다. 이때 선교부에서 일하던 조용택 전도사는 장재태 전도사와 함께 유하례 선교사를 피신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유하례 선교사를 모시고 77일간 꼬박 바위 틈에 숨어서 기도와 성서읽기로 세월을 보내던 중 유엔군이 뿌린 전단을 보고 하산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때 하루 먼저 하산했던 조용택 전도사는 퇴각하는 공산군들에게 붙잡히며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