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휘 ( 李 聖 徽 , 1889 ~ 1950 )

“ 장로교 평양신학교 마지막 교장 ”
생년월일 : 1889년 2월 19일
출생지 : 평북 철산
순교일 : 1950년 10월 UN군 북진 시
순교지 : 평양감옥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이성휘는 1889년 2월 19일 평북 철산에서 출생했다. 이성휘는 평양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신학사를,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헨노이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8년 귀국하면서 평양노회에서 안수 받고 서문밖교회에 부임, 목회하면서 숭실전문학교 교수, 평양신학교 강사로 출강했다.

이성휘목사는 공산정권하에서 당시 교장 김인준이 연행되고 평양신학교가 공산당에 징발 당하자 신학교폐교불가를 외치고 마포삼열박사기념관에서 개교하고 교장직을 수행하다가 공산정권의 불허방침에 서문밖교회 교육관으로 옮겼다.

이목사는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오전 10시 경건회시간이면 제일 먼저 강대상에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24편을 외우며 “환난과 핍박 중에도” 찬송가를 외며 눈물과 결심으로 불렀다.

공산당은 마포삼열기념관에서의 신학교운영도 허락하지 않았고 장로교와 감리교를 총폐합하고 기독교신학교 교장이 되어달라는 공산정권의 강요에 이목사는 공산당의 트릭임을 눈치 채고 다른 사람을 임명해 달라며 거부했다. 공산당 교육국요원들은 성화신학교 송정근 학장에게도 찾아갔으나 송정근교장도 거절했고 결국 기독교도연맹 부회장 김응균목사가 교장이 되었다.

그 후 이성휘목사는 반동자로 낙인이 찍히고 1950년 6.25전쟁 직전 내무서원들에게 연행당해 끌려가 1951년 10월 UN군이 북진할 때에 평양 감옥에서 퇴각하는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해 62세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