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 ( 李 鏡 , 1897 ~ 1950 )

“성결교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진 순교자”
생년월일 : 1897년
출생지 : 함경남도 신북
순교일 : 1950년 8월 23일
순교지 : 
직분 : 목사
교단 : 성결교


지주이며 유생인 이기감의 외아들로 태어난 건은 엄한 아버지밑에서 한학을 깨우쳤으나 언제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라 하던 중 동양선교회의 전도를 받고 단신 상경하여 보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공부하다가 고향으로 두번이나 붙잡혀온 그는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신학부에서 2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925년 졸업하고 평양으로 파송받았다.

당시 서북지방은 장로교와 감리교회가 있었으나 성결교회는 전무한 상태였다. 성결교를 처음 대하는 서북인들은 이단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상수리교회(평양교회)를 개척하여 정성을 다하자 나날이 부흥되고 1928년에 안수받아 담임목사가 되었다. 가정의 도움없는 고학으로 몸이 허약해진 그였으나 정성스러운 목회로 교회가 곳곳에 개척되었다.

1932년 성결교신학교 교수로 청빙되어 학교발전에 이명직과 함께 심혈을 쏟았다. 신사참배반대로 거세게 불어닥친 태풍은 성결교회를 유독히 할퀴었다.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투옥 당해 고난을 겪으면서 믿음의 투쟁을 계속하였다. 6개월의 옥고를 치른 몸은 극도로 약해졌고 교단의 강제해산의 쓰라림을 겪는 그의 가슴은 찢겨나갔다. 학교도 빼앗기고 사택에서 쫓겨난 이건은 1945년 6월에 병든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낙향하였다. 평생의 반려자였던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겪었으나 해방과 함께 상경하여 교단 재건에 주력하였다.

교회재건이 힘있게 진행되어 갈때 신학교역시 활발하게 재건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신학교 교장으로 수고하던중 625전쟁으로 공산군에게 학교도 뺏겨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8월 23일 수많은 목사들과 함께 체포 당한 그는 공산군의 퇴각과 함께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세월 속으로 행진하여갔으나 승리의 길이었다.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내 이건목사순교기념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