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해 용 ( 1900 ~ 1947 )


“울릉도를 복음화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순교자”
생년월일 : 1900년 3월 3일
출생지 : 강원도 울진군 울진면 화성리 270번지
순교일 : 1947년 8월 13일
순교지 : 
직분 : 감로(장로)
교단 : 침례교


김해용 감로는 지난 1900년 3월 3일 강원도 울진군 울진면 화성리 270번지에서 김도인씨의 4남으로 태어나 2살 때 부모를 따라 울릉군 북면 천부리 591번지(홍문동)에 정착해 살았다. 홍문동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종우감로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됐으며 당시 김 감로는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항상 주위를 돌보는 등 높은 인품을 지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김해용 감로는 1923년 태하동 출신 강순이씨와 서달교회에서 결혼했고 지난 1940년(40) 총회로부터 울릉도 제 4대 감로직을 안수 받았다. 지난 1942년 일제의 민족말살과 신사참배로 종교를 탄압하던 시기에 총회로부터 원산번역 신약성경 30권을 받은 뒤 울릉도 복음전도 활동을 하기 위해 몰래 숨겨놓았다가 일본헌병대에 적발됐다. 김 감로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총회지도자 32명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구속, 원산형무소에서 11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해 5월 15일 간이재판으로 구속된 종교지도자 32명 중 9명(이종근 감목, 전치규 안사, 노재천, 김영관, 백낙조, 장석천, 박기양, 신성균, 박성도)을 제외한 23명이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당시 김 감로도 함께 석방됐으나 심한 고문과 매질 등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해방 후 2년 만인 지난 1947년 8월 13일 소천했다.